JEONG HEEW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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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란


작가의 작업실은 강남대로에 있는 한 고충건물 9층에 자리 잡고 있었다.
공식적으로 작가들의 스튜디오로 마련된 건물들을 제외한다면 작업실이라는 게 특정한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은 아니다. 편의상 거주지와 가깝다거나 세가 저렴하다거나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고 따라서 그 형태는 상가건물에서부터, 원룸, 오피스텔, 일반 주택까지 매우 다양하다. 그렇다고는 해도 강남역 일대는 익히 들어왔듯이 영어학원, 쇼핑가, 극장과 음식점 등으로 번잡한 지역인지라 세도 비쌀 것이고 미술학도들이 모이는 대학가나 갤러리 등 문화시설이 운집된 지역도 아니어서 다소 의아해 하던 중 정희우 작가는 현재 그리고 있는 그림의 소재와 미래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 해 주었다.

미디어 시대의 풍경화는?
작업실 벽에는 강남대로 주변을 나타내는 부동산 지도와 작가가 직접 찍은 사진들이 파노라마처럼 이어 붙어 있었다. 재미있었던 점은 작업실이 상대적으로 고층에 위치한지라 대부분의 사진들이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본 수직적 시점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농담처럼 작가는 강남대로의 기록 작업이 끝나면 작업실을 옮겨 그것도 건물의 9층들만을 
옮겨 다니며 새로운 시리즈의 작업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고층 건물들은 정면의 시점에서 그려지고 도로와 차, 사람들은 위에서 내려다 본 각도로 그려져 있었다. 특히 대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 서 있는 건물들은 마치 물에 투영된 것처럼 화면 위아래로 펼쳐져 있었는데 문득 작가가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했고 이후 사진과 비디오를 이용한 설치작업들을 해왔다는 점, 특히 강 수면에 거울을 띄워놓고 수면에 반사된 이미지와 거울에 투영된 이미지를 함께 사진기로 기록했던 작업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작가가 다시 인간의 눈을 통해 실제로 관찰되는 것과 또 다른 기계의 눈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걸까?

도시화된 환경 속에서 사람들은 걷기보다는 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에 익숙하다.
길을 나서기 전에 인터넷의 빠른 길찾기를 참조하거나 아예 자동차를 운전하며 모니터 속의 영상지도를 본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이 도구들 없이는 새로운 곳을 찾아 나설 생각을 좀처럼 하지 않으며, 대중교통 수단으로 이동할 때 역시 시스템화 된 많은 기호들을 보고 기억해야 한다. 현실적 풍경들이 기호들로 대체되고 공간은 입체적이거나 연속적인 것이 아닌 현시적이고 파편적인 것이 된다.

정희우의 신작 그림들을 통해 매체는 바뀌었으되 현대인들이 사물을 지각하는 방식에 대한 관심은 지속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객관적인 눈으로써 기능하는 카메라가 보여주는 것이 과연 우리가 보는 것에 대한 사실적 기록일까' 라는 기본적인 의문이 4년 전의 작업에서 정밀한 카메라의 시각을 통해서 저절로 드러났다면 이제 그러한 문제는 기계가 생산해 낸 기록물에서 벗어나 인간의 손으로 기록된 그림을 통해 전개되고 있다. 지금까지 새로운 기계의 발명은 인간의 사고방식에 지대한 변화를 주어왔고 지도 보기를 즐겨하던 작가가 미디어 시대의 디지털 지도를 풍경화의 소재로 삼고 있다는 점은 흥미로웠다. 과연 내가 기억하는 도시의 풍경은 어떤 것일까?

아주 객관적이지도 또 아주 주관적이지도 않은 어떤 풍경
우선 화면에 배치되는 사물의 크기는 '산은 크게, 나무는 산보다 작고, 사람은 나무보다 작게 그린다' 라고 하는 동양화의 기본 화법을 따르고 있다. 일단은 보이는 대로 그린다는 작가의 태도에서 과거의 역사적 기록화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건물, 나무, 사람들은 인위적인 투시원근법을 무시한 채 다각적인 시점의 변화를 보여준다.
풍경 속에 등장하는 인물군상들은 작고 단순하게 묘사되지만 놀랍게도 색과 동세에 의해 개별적 특성-성별이나, 직업, 취향-등을 보여주기도 한다. 대부분이 검은 양복을 입은 직장인들인데  군상 속 인물들이 지도 속의 아이콘처럼 단순화되고 유형화 되면서  위에서 내려다 본 시점에 의해  마치 전지전능한 누군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동양화의 산처럼 그려진 현대식 고층건물들과 폭포수처럼 화면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통해  과거의 풍경 산수화가 강남대로변의 빌딩 숲으로 대체되었다. 특히 고층건물들은 나무보다 예쁘고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차를 타고 이동하며 속도감 있게 변화하는 도시 풍경, 그리고 도로 사인들이 만들어 내는 패턴과 영상 지도를 보며 이동하는 우리세대가 기억하는 풍경은 현실과 병렬적인 어떤 다른 것일 수도 있다.  작가의 말처럼 그 풍경은 이미지와 기호, 풍경화와 지도 사이의 어떤 것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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