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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기록하는 탐색자_ 정희우의 ‘도시화(都市畵)’
 송 희 경 | 이화여대 초빙교수

 
“인류의 가장 위대한 창조물은 도시였다. 도시는 가장 심원하고 지속적인 방법들을 동원해서 자연 환경을 새롭게 바꿀 줄 아는 인류의 능력을 입증하는 증거물이다. 또 인류가 하나의 종(鍾)으로서 상상력을 발휘하여 만들어낸 최고의 세공품이다.”
 -조엘 코트킨, <<도시의 역사>>(윤정희 역, 을유문화사, 2007), 24쪽.
 
근대성의 산실이자 경제 발전의 상징인 도시는 수많은 작가들에게 예술적 영감을 부여해온 인류의 산물이다. 각 시대에 따른 인간의 생태와 물질문명을 오롯이 보여주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최근 독특한 도시 표상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바로 (재)한원미술관 기획의 제8회 화가전(畵歌展)인 <플라뇌르 Flâneur_어느 산책자의 기록>(2017. 8. 17-9. 29)이 그것이다. 정희우, 민재영의 2인전으로 진행되는 이 전시의 주요 핵심어는 ‘플라뇌르(산책자)’이다. 플라뇌르는 19세기 프랑스의 시인 샤를르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 1821-1867)가 “도시를 경험하기 위해 걸어 다니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언급했고, 20세기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이 “거리를 두고 관람한다”는 의미로 활용하면서 미술 이론가들 사이에 회자된 용어이다.

정희우는 한국의 도시를 다양한 방식으로 재현해온 작가이다. 특히 그는 본인이 유년시절부터 살아 온 서울에 주목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조형 언어로 대도시의 단면들을 시각화 했다. 순식간에 변화하는 서울을 기록하면서 그 공간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시간의 층위를 기억하기 위함이다. 그가 지필묵으로 창출한 도시는 <강남대로_고현학> 시리즈(2008-2011)에서부터 목격된다. 그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서울의 강남은 1980년대를 기점으로 가장 큰 변화를 겪은 대한민국 소비문화의 중심지이다. ‘고현학(考現學, modernology)’이라는 작품 제목이 알려주듯, 정희우는 변동이 극심한 서울의 풍속과 세태를 찬찬히 조사하여 강남의 ‘시각적 아카이브’를 구축하고자 했다. 강남대로의 고현학을 위해 그가 선택한 방식은 ‘지도’ 만들기였다. 도시를 구성하는 복잡한 요소들, 예컨대 길게 늘어선 고가도로, 차와 사람이 다니는 차도와 인도, 기하학의 형태를 띤 빌딩, 그 사이를 누비는 자동차 등을 다양한 시점에서 관찰하여 지도 형식으로 재현한 것이다. 지나치게 빠르게 변화해서 사라져 버린 추억의 장소를 기억하려는 의도이다.

<시간을 담은 지도> 시리즈(2012)는 40년 역사의 강남대로 4km를 4년에 걸쳐 기록한 작품군이다. 조선시대 <도성도>의 지도 제작법을 수용하여 건물과 건물 사이에 보폭을 계산했고, 건물의 층수를 일일이 세었으며, 간판, 나무, 차 등을 꼼꼼하게 사생했다. 도시 풍경의 변화를 기록하기 위해 정희우가 선택한 방식은 발터 벤야민이 19세기 자본주의 도시를 탐구하면서 언급한 ‘파노라마(panorama)적’ 지각 체험이다.
<강남대로_고현학>과 <시간을 담은 지도> 제작을 위해 옥상 관찰을 즐겼던 정희우는 도로에 배치된 기호들, 예컨대 신호등, 표지판, 맨홀, 간판 등이 도시 순환을 원활하게 해주는 혈관이자, 심장이며, 위장임을 알게 되었다. 각종 영양분과 혈액이 원활하게 공급되어야 온전한 건강함을 유지하듯, 신호등, 표지판, 맨홀, 간판 등이 곳곳에 제대로 배치되어야 도시 질서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도시민은 이러한 기호에 너무 익숙해진 탓에 순간 그 중요성을 망각하지만, 도로표지는 교통이라는 순환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다.

정희우는 도시의 시각적 기록 방식을 ‘그리기’에서 ‘찍기’로 바꾸었다. 소위 탁본(拓本) 기법을 도입한 것이다. 널리 알려졌듯이 탁본이란 금속, 기와, 돌, 나무 등에 새겨진 그림이나 문자를 베껴내는 기법으로, 중국 수나라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오색 찬연한 삼라만상의 가시성은 탁본을 거치면 흑백의 아스라한 실루엣으로 변신한다. 탁본의 결과물이 오래됨, 낡음, 빛바램 등을 연상시키고 멈춰진 시간과 과거 기억을 떠올리는 유물로 인식되는 까닭이다.

정희우는 다양한 도시 기호를 탁본으로 찍어나갔고, 이를 <필링 더 시티(Peeling the city)> (2012)라고 명명했다. “껍질을 벗기다”의 ‘peel’은 도시 기호를 탁본하며 화선지를 떼어내는 행위에서 착안했다. 도시의 겉껍질을 벗기는 듯한 ‘peeling’은 길바닥의 맨홀이나 표지판을 만지면서 도시 자체를 ‘느낀다는’ ‘feeling’으로도 들린다. 이렇듯 정희우에게 탁본 기법은 도시 공간을 저장하는 독특한 장치이다.

다음은 <담지도>(2013)이다. ‘담지도’란 도시 구획의 기본인 콘크리트 담을 수직으로 이동하면서 탁본하여 연결시킨 시각물이다. <강남대로_고현학>이나 <시간을 담은 지도>가 옥상에서 목도한 강남 변천사의 거시적 전도(全圖)라면, 면과 면의 연결로 형성된 <담지도>는 강남을 구성하는 코드들을 직접 만지면서 체취한 도시의 미시적 지표이다. 정희우가 탁본한 담은 그가 나고 자란 1970년대 후반부터 건설된 아파트의 부속물이다. 1983년 건설된 대치동의 선경아파트 담을 탁본한 <담지도_대치선경>을 보면, 벽돌담이 30년이라는 시간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채 일부 파손되거나 모서리가 뭉뚝해졌음이 확인된다. 결국 <담지도>는 작가가 성장기에 대한 기억의 단편이자, 그 시간적 층위들이 켜켜이 쌓여있는 증거물인 셈이다.

<종로의 나무 간판>(2014)은 사라져 가는 종로의 나무 간판을 찾아내어 건탁한 뒤 원래 간판의 색을 칠한 작품군이다. 개점 35년 된 양복점, 40년이 넘은 한의원, 10년 남짓의 디지털 보청기 집의 간판들. 종로 1가에서 6가까지 ‘산책’하면서 발견한 간판들에는 중간에 상호가 바뀐 탓에 글자를 덧 쓴 흔적이나, 광고지를 부착한 자국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따라서 <종로의 나무 간판>의 관람객은 종로 거리의 또 다른 ‘산책자’가 된다. <경(境)> 시리즈(2016)는 민간인통제구역인 개성 공단에 있는 도로 표지의 탁본들이다. 서울, 파주, 개성, 남북, 땅굴 등, 아스팔트 바닥의 문자를 직접 만지고, 그 위에 화선지를 붙이고, 솜방망이에 먹을 묻혀 두드려가며 찍었다. 가깝지만 아무 때나 함부로 갈 수 없는 금단의 구역.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민통선의 도로 표지의 복합적인 함의를 금방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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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자연을 만들고 인간은 도시를 만들었다”는 영국 시인 윌리엄 쿠퍼(William Cowper, 1731-1800)의 말처럼, 지구상에서 인류가 보낸 시간은 도시의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 정희우는 지도와 탁본이라는 방식으로 도시를 기록했고 이에 내재된 다층적 함의를 표현했다. 보고, 걷고, 밟고, 만지고, 찍는 행위를 통해 서울의 역사성과 시대적 표상을 드러낸 것이다. 이는 단순히 서울을 어슬렁거리는 '산책자(flâneur)'의 구경이 아닌, 켜켜이 쌓은 시간의 층위를 고스란히 연구하는 ‘탐색자(prospecteur)’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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