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나와 가족이나 친구 등의 등장인물은 분명히 기억나지만 살았던 집, 걸었던 거리, 쓰던 물건 등의 미장센은 어렴풋한 느낌만 남아있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한국인은 대부분 그럴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이루어진 한국의 도시화에 우리 기억 속의 공간들을 내준 것이다. 7살 때 살았던 어느 대학 후문 앞 주택가는 이제 원룸 촌이 되었고, 14살 때 저녁이면 나가서 배드민턴을 치던 공터에는 주상복합이 들어서있다. 내가 자라오는 동안 이곳저곳이 누에고치 치듯이 가림막을 세우고 공사를 하더니, 허물 벗듯 가림막을 치우고 나면 크고 말끔한 새 건물이 들어서는 변태를 거듭했다. 나의 성장기에 쉼 없이 일어나던 일이라 그 변화들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고, 도시가 나와 같은 속도로 성장기를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다 나도 이 도시도 어느 정도 성장이 끝난 후에 뒤를 돌아보니, 공간은 시간과 함께 군데군데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속도는 느려졌지만 지금도 여기저기서 공간의 변태가 이루어지고 있다.
나는 앞으로도 내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 사라질 공간을 한 순간이라도 붙잡는 작업을 하고 있다. 한국의 도시화 중에도 가장 전투적으로 이루어졌던 강남대로를 지도처럼 기록하듯 그리는 프로젝트를 2011년까지 4년간 진행했다. 강남개발은 제3한강교라고 불리던 한남대교를 건설하고, 이어 말죽거리까지 강남대로를 따라 이루어졌다. 강남개발의 역사는 40년가량 되었고, 나는 4년에 걸쳐 양재역에서 신사역까지 약 4km 구간을 기록했다. 걸음수로 폭을 측량해 건물을 그리고, 강남대로 상의 거의 모든 건물의 옥상에 올라가 거리의 사람, 차, 도로, 나무의 사진을 찍어서 그렸다. 그 결과 강남대로 연작에는 강남대로의 건물의 높이가 통계처럼 한 눈에 보이고, 차량의 흐름, 사람의 밀도가 보인다. 4년에 걸쳐 그린 결과로 그림에는 다른 계절이 나오고, 다른 날씨가 나온다. 택시의 색도 그린 시기에 따라 다른 색이 등장한다. 빠르게 변하는 도시에서 몇 년만 지나도 잊혀진 과거가 되어버리는 것들을 고고학자의 사료를 미리 준비하듯 진행한 작업이다.
강남대로 연작을 완성한 후에는 도로의 기호로 탁본을 떴다. 강남대로의 거리 사진을 찍기 위해 옥상에 올라가보면 차선과 도로의 화살표가 선명하게 내려다보인다. 그 위에 차선을 따라 화살표가 지시하는 방향으로 달리는 차들을 보면 새삼 기호의 위력을 실감한다. 이 많은 도시의 차와 사람이 기호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면서, 혼란을 빚지 않고 흐름을 만들어 도시의 순환을 만들어낸다. 동물의 심장과 혈관의 역할을, 도시에서는 기호와 길이 하고 있는 것이다. 기호의 힘과, 또 그 강력한 지시를 무의식중에 끊임없이 실천하며 살고 있는 도시인의 고단함을 생각하게 된다. 탁본은 주로 오래된 비석 등을 기록하기 위해 뜨는데, 도로의 화살표를 뜸으로써 매 순간 유적이 되어가는 도시의 흔적을 기록한다.
나는 앞으로도 내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 사라질 공간을 한 순간이라도 붙잡는 작업을 하고 있다. 한국의 도시화 중에도 가장 전투적으로 이루어졌던 강남대로를 지도처럼 기록하듯 그리는 프로젝트를 2011년까지 4년간 진행했다. 강남개발은 제3한강교라고 불리던 한남대교를 건설하고, 이어 말죽거리까지 강남대로를 따라 이루어졌다. 강남개발의 역사는 40년가량 되었고, 나는 4년에 걸쳐 양재역에서 신사역까지 약 4km 구간을 기록했다. 걸음수로 폭을 측량해 건물을 그리고, 강남대로 상의 거의 모든 건물의 옥상에 올라가 거리의 사람, 차, 도로, 나무의 사진을 찍어서 그렸다. 그 결과 강남대로 연작에는 강남대로의 건물의 높이가 통계처럼 한 눈에 보이고, 차량의 흐름, 사람의 밀도가 보인다. 4년에 걸쳐 그린 결과로 그림에는 다른 계절이 나오고, 다른 날씨가 나온다. 택시의 색도 그린 시기에 따라 다른 색이 등장한다. 빠르게 변하는 도시에서 몇 년만 지나도 잊혀진 과거가 되어버리는 것들을 고고학자의 사료를 미리 준비하듯 진행한 작업이다.
강남대로 연작을 완성한 후에는 도로의 기호로 탁본을 떴다. 강남대로의 거리 사진을 찍기 위해 옥상에 올라가보면 차선과 도로의 화살표가 선명하게 내려다보인다. 그 위에 차선을 따라 화살표가 지시하는 방향으로 달리는 차들을 보면 새삼 기호의 위력을 실감한다. 이 많은 도시의 차와 사람이 기호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면서, 혼란을 빚지 않고 흐름을 만들어 도시의 순환을 만들어낸다. 동물의 심장과 혈관의 역할을, 도시에서는 기호와 길이 하고 있는 것이다. 기호의 힘과, 또 그 강력한 지시를 무의식중에 끊임없이 실천하며 살고 있는 도시인의 고단함을 생각하게 된다. 탁본은 주로 오래된 비석 등을 기록하기 위해 뜨는데, 도로의 화살표를 뜸으로써 매 순간 유적이 되어가는 도시의 흔적을 기록한다.